평양 출신 현정준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1927~), 남한 최초의 천문학 교수

[내 인생의 멘토 – 안홍배 부산대학교 교육부장 편] 서울대 현정준 은사 [출처 : 부산일보 2015.2.10.]

학문에 대한 태도와 불의에 대한 자세를 가르친 분들

1983년 부산대에서 열린 한국천문학회 때의 모습. 앞에서 두 번째 줄 왼쪽에서 세 번째가 현정준 교수, 같은 줄 맨 왼쪽이 안홍배 교수.

우리 집에서 딸과 아내는 나를 외계인이라고 부른다.

내가 아주 특별한 캐릭터를 갖고 있다는 것인데, 나는 어떻게 오늘의 내가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내 인생을 관통한 두 축은 학문과 등산이었다.

대학 4학년을 마치고 생각한 것은 천문학과를 졸업한 것이 아니라 문리대 산악회를 졸업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가장 열정적으로 살아온 학창시절에 최우선 순위를 둔 것이 산악회 활동이었기에 오늘의 나를 만든 멘토는 다름 아닌 ‘산’ 그 자체이자 함께 등산을 했던 문리대 산악회 선후배들일 것이다.

학문은 등산과 같다고 했던가. 나는 등산을 좋아하는 만큼 학문이 좋았다. 특히 천문학은 내가 천문학을 하기 위해 고3이 되면서 문과에서 이과로 옮겨 진학할 정도로 하고 싶은 분야이기 때문에 그 사랑이 남달랐다.

대학에 들어가 만난 나의 은사들은 한결같이 학문에 열정적이었고 제자를 사랑했다. 천문학이라는 학문이 특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가 남달랐다.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천문학을 한다는 것은 별을 보고 사는 것이지 밥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닌 시대이기 때문에 정말 천문학을 좋아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을 간 분들이다.

한국천문학의 대부 선생님, 모든 천문학자의 멘토이며 개인적인 생활에도 영향을 준 분

은사 중에도 특별한 분이 한 분 계신 현정준 선생님이다.

서울대에 천문학과를 열고 이 땅에 천문학의 씨앗을 뿌려 수많은 제자를 길러 우리 모두의 멘토가 되신 분이다.

나는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통해 10여 년을 선생님께 배웠으니 천문학자로서의 내 삶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내 삶도 많은 영향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현 선생은 평생 학문 외길의 길을 걸어온 분이다. 선생님은 일상에는 소탈하고 말수도 적었다. 짧지 않은 시간, 지근에서 선생님을 만났지만 누군가와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학생들에게도 항상 따뜻한 관심을 보여 누구에게나 부모님과 같은 분이었다. 유신 반대로 숨진 서울대 농대 김상진 씨의 49제를 앞두고 1975년 5월 22일 관악캠퍼스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고 김상진 추모집회가 있었다.

나는 산악회 동기인 친구 김도영 씨의 비장한 성명서 낭독을 눈시울을 붉히며 지켜보던 중 몰려든 사복 경찰관들을 피해 현 선생 연구실에서 하루를 보낸 기억이 난다. 이 사건으로 수십 명의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다. 나도 현 선생님의 배려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학문의 길에서 내가 만난 나의 스승들은 한결같이 학문의 열정만큼이나 학문에 엄격했다. 내가 평생 학문을 사랑하고 매진할 수 있었던 것도 내 스승들이 학문에 목숨을 걸도록 정진하는 모습을 보고 배웠을 것이다. 은사들은 학문의 열정은 모두 컸지만 개성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는 누구에게도 거리를 두지 않았고 여러분의 개성이 달랐기 때문에 나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 번역자소개 현정준 서울대 교수

1927년 평양 출생.서울대 물리학과와 같은 대학원 졸업.부산대 교수, 한국천문학회장 역임.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원 천문학과 교환교수.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천문학과 명예교수저술한 책으로 『지구과학개론』(공저), 『별·은하·우주』가 있고, 번역한 책으로 『우주의 창조』, 『아시모프의 천문학 입문』, 『시간의 역사』 등이 있다.

[출처 : 블랙홀 박사 박석재 씨의 네이버 블로그]

‘학생에게는 ‘은하수’를 준 애연가'[출처 : 서울대 총동창회 사이트(458호 2016년 5월]) 스승의 날 특집 : 나를 키운 은사를 그려]

현정준/문리대

확률에 관한 수업 중에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담배를 즐긴 선생님이 평생 피우던 담배의 수를 계산해서 던지고 버린 담배 중에 세 개비가 섰다고 예를 들었네요.

당신은 싼 담배를 피우면서도 방문한 학생들에게는 당시 최고급으로 ‘천문학과 담배’인 산과 은하수를 권했습니다. 천문학과 75학번 제자

객성 | 현정준 <서울대문리대학교 교수·천문학> [출처 : 중앙일보 1973년 5월 10일]

창립한지 불과 8주년이 되는 한국천문학회가 어린이날에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최근 미국에서 돌아온 한 회원이 들려준 이야기는 매우 인상 깊었다.

그가 5년 전 미국에서 발표한 논문이 실마리가 되면서 미국 천문학자들이 한국의 고대 천문 관측 기록에 유례없는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천문관측기록이란 임진왜란 때 수개월에 걸쳐 나타난 객성에 대한 것이다.

객성은 성도에 없는 새로운 별을 가리킨다.

혜성·샛별·초신성이 바로 객성에 속한다.

객성의 출현이 국가 흥망성쇠의 전조로 여겨지던 시대라지만 전란 중에도 천문관 쪽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우리 선조의 지혜에 미국 천문학자들이 경탄해 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같은 시대에 서양에는 티코 브라헤(Tycho Brache) 같은 유명한 관측자가 있었는데도 객성에 대한 관측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것은 아마도 십자군 전쟁으로 천문관측 따위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객성이 이처럼 천문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왕'(카시오페아)자리에 강한 전파를 내는 전파 천체 ‘카시오페아 A’가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지만 아직 그 생년월일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이런 전파 천체는 흔히 과거 초신성의 폭발이었던 장소에 있는 것이다.

그 유명한 예로 하늘에서 강한 전파원으로 알려진 황소자리 A(게성운)가 1054년 폭발한 초신성이라는 사실이 중국과 일본의 고대 천문 관측 기록에서 밝혀진 바 있다.

따라서 ‘왕량’에 나타난 객성이 ‘카시오페아 A’를 태어나게 한 초신성의 폭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추측이 미국 천문학자들의 관심을 끌면서 급기야는 ‘팔로마’ 산의 200 ‘인치’ 망원경을 동원, ‘카시오페아 A’를 추적하게 됐다는 것이다.

500여 년 전 선조들이 쌓은 업적이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 미국 천문학자들의 경탄을 불러일으켰는데도 우리는 이렇다 할 업적을 내지 못하고 있으니 천문학을 영위하는 우리로서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직 정년퇴임 현정준 씨(인터뷰) [서울신문 1992년 3월 27일]

◎”우주연구 정년 없을 것” / 강사로 새출발…저술 활동도 열심히

국내 최초의 천문학과 교수인 현정준(65천문학과) 씨가 2월 말로 정년퇴직, 서울대 강사로 새 생활을 시작했다.

58년 서울대에 우주와 기상에 관한 국내 최초의 학과인 천문기상학과가 생겨 천문학 강의를 시작해 국내 최초의 천문학 교수가 된 그는 33년간의 천문학과 교수 생활을 마치고 신입생 대상 주당 3시간짜리 교양과목인 인간과 우주를 강의하며 학자의 노년을 설계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천문학과 관련된 국내 서적은 고사하고 영어 원서조차 구하기 어려웠을 때였어요. 1957년 소련(현 독립국연합)의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 성공으로 우주 공간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은 세계를 압도했습니다. 바로 그런 분위기 덕분에 이듬해 서울대에 한국 최초의 천문기상학과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마땅한 전공자가 없어 지질학과 정창희 교수(현 서울대 명예교수)가 임시학과장을 맡았고 천문에 대해서는 현 교수가, 기상에 대해서는 당시 기상청에 근무하던 김성삼 씨가 각각 맡아 가르치는 상태였다고 한다.

소백산천문대에는 24인치 반사망원경이, 대덕표준과학연구원 천문대에는 지름 14m 규모의 전파망원경이 설치돼 있으며 93년 초 우주의 3분의 1을 탐색할 수 있는 지름 1.8m의 광학망원경이 설치될 예정입니다.

또 몇몇 대학들도 기초적인 연구활동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장비를 갖추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천문학을 전공하고 외국 유학 경력을 가진 1세대 대학자군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등 이제 와서 국내 천문학계는 출발점에 섰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달력 제작 등 농경생활과 항해술 등 인류 생존을 위해 문명의 발달과 함께 성장해온 천문학은 이제 물질과 우주의 기원 및 원리를 밝히는 프런티어 학문으로 발전하고 있다.

천문학 연구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날로 세분화되고 있습니다.하지만 무엇보다도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외부의 은하나 별이 보내오는 전파를 포착하고 분석하여 지구 밖의 모습을 밝히려는 전파천문학이 가장 활기를 띠며 중심 분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현 교수는 지난 40년간 일도 못하고 세월만 보낸 것 같아 부끄럽다며 강의 부담에서 벗어나 책도 쓰고 우주론에 대한 공부도 더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현 교수는 대우학술총서의 하나인 현대 물리적 우주론을 쓰고 있다)

서울대 천문학과(총장 윤홍식)는 지난주 현 교수를 명예교수로 대학 당국에 추천했으며 다음 학기 이전에 명예교수로 추대될 전망이다.

달팽이도 내 집을 가지고 있는데 ① [출처 : 통일뉴스 2020.9.4.] 민족일보 다시 읽기 <147> [서울대 문리대 부교수 현정준 씨]

「손님 오지 않는 게 좋겠어요」교단 12년에 서재 같은 건 생각도 할 수 없다.

「…. 서재요? 원 최저 기본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무슨 서재를 갖겠어요?”

이렇게 반문하는 서울대 문리대 부교수 현 씨는 집을 살 생각은 아예 포기했습니다. 전셋집이나 독채를 빌리고 싶은데요. 최소 백만달러는 하니까 훨씬 먼 얘기죠.

교수 생활 13년에 어떻게 하면 서재를 하나 마련하지 못할까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책만 꽂아둔다고 서재가 아닌가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연구실 안에서 세월을 보내는 학자들에게 따로 연구비가 지급되는 것도 아니어서 작은 월급으로 생활비와 연구비를 합쳐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 소유의 주택을 마련할 여유는 생각할 수 없다는 현 교수다.

저서의 인세 등도 없는 처지다. 연구 분야가 천문학인 ‘현’ 교수는 부산에서 서울대학교로 전임한 이래 3년째 동숭동 소재 문리대 교수 ‘합동 관사’로 우거하고 있다.

말이 관사일 뿐-8.15 이전에는 이공학부 독신교수들의 아파트여서 부엌도 없다. 8가구가 들어서 있는 이 아파트의 2층부터 다미 5장의 침실과 2, 3평 넓이의 마루 사이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 작은 세상에서도 나이가 인구 증가가 끊임없이 혼나네요. 하하하, 우리 집만 해도 네 식구인데.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디 모실 자리라도 있어야겠죠?”

부산에 있을 당시 ‘현’ 교수는 빚을 내 80만 팬 집을 산 적이 있었다고-그런데 곧 상경하게 돼 다시 팔게 돼 원금과 이자를 갚기에도 부족했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재직 10년 뒤 퇴직하게 되면 집 한 채는 살 수 있는 금액이 공제회에서 급여된다는데 7, 8년 뒤 화폐 가치가 그것을 가능하게 할지는 적들이 의문이라고-아쉬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현’ 교수는 자기 집을 소유한다든가, 그것을 대대로 바꾼다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하고, ‘이백의 춘야연 도리원서’에 이런 말이 있잖아요. 부천지자만물지역 여광음자백대지과객세상이 주막과 같다면 주택에 대한 것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땅은 좁은데 인구만 늘어나니까 도시만큼 아파트화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 상황에는 교수 ‘아파트’가 대학에 병설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다짐하면서 아이들에게 유산으로 집을 남길 수 없다면 각자 특기나 배워두기 위해 초등학교 재학 중인 두 아이에게 바이올린을 사줬다는 현 교수는 체념한 듯 오히려 태연한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컷은 현 교수의 서재 스케치)

(R기자)

확률에 관한 수업 중에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담배를 즐긴 선생님이 평생 피우던 담배의 수를 계산해서 던지고 버린 담배 중에 세 개비가 섰다고 예를 들었네요.

당신은 싼 담배를 피우면서도 방문한 학생들에게는 당시 최고급으로 ‘천문학과 담배’인 산과 은하수를 권했습니다. 천문학과 75학번 제자

객성 | 현정준 <서울대문리대학교 교수·천문학> [출처 : 중앙일보 1973년 5월 10일]

창립한지 불과 8주년이 되는 한국천문학회가 어린이날에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최근 미국에서 돌아온 한 회원이 들려준 이야기는 매우 인상 깊었다.

그가 5년 전 미국에서 발표한 논문이 실마리가 되면서 미국 천문학자들이 한국의 고대 천문 관측 기록에 유례없는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천문관측기록이란 임진왜란 때 수개월에 걸쳐 나타난 객성에 대한 것이다.

객성은 성도에 없는 새로운 별을 가리킨다.

혜성·샛별·초신성이 바로 객성에 속한다.

객성의 출현이 국가 흥망성쇠의 전조로 여겨지던 시대라지만 전란 중에도 천문관 쪽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우리 선조의 지혜에 미국 천문학자들이 경탄해 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같은 시대에 서양에는 티코 브라헤(Tycho Brache) 같은 유명한 관측자가 있었는데도 객성에 대한 관측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것은 아마도 십자군 전쟁으로 천문관측 따위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객성이 이처럼 천문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왕'(카시오페아)자리에 강한 전파를 내는 전파 천체 ‘카시오페아 A’가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지만 아직 그 생년월일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이런 전파 천체는 흔히 과거 초신성의 폭발이었던 장소에 있는 것이다.

그 유명한 예로 하늘에서 강한 전파원으로 알려진 황소자리 A(게성운)가 1054년 폭발한 초신성이라는 사실이 중국과 일본의 고대 천문 관측 기록에서 밝혀진 바 있다.

따라서 ‘왕량’에 나타난 객성이 ‘카시오페아 A’를 태어나게 한 초신성의 폭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추측이 미국 천문학자들의 관심을 끌면서 급기야는 ‘팔로마’ 산의 200 ‘인치’ 망원경을 동원, ‘카시오페아 A’를 추적하게 됐다는 것이다.

500여 년 전 선조들이 쌓은 업적이 과학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 미국 천문학자들의 경탄을 불러일으켰는데도 우리는 이렇다 할 업적을 내지 못하고 있으니 천문학을 영위하는 우리로서 부끄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서울대 천문학과 교수직 정년퇴임 현정준 씨(인터뷰) [서울신문 1992년 3월 27일]

◎”우주연구 정년 없을 것” / 강사로 새출발…저술 활동도 열심히

국내 최초의 천문학과 교수인 현정준(65천문학과) 씨가 2월 말로 정년퇴직, 서울대 강사로 새 생활을 시작했다.

58년 서울대에 우주와 기상에 관한 국내 최초의 학과인 천문기상학과가 생겨 천문학 강의를 시작해 국내 최초의 천문학 교수가 된 그는 33년간의 천문학과 교수 생활을 마치고 신입생 대상 주당 3시간짜리 교양과목인 인간과 우주를 강의하며 학자의 노년을 설계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천문학과 관련된 국내 서적은 고사하고 영어 원서조차 구하기 어려웠을 때였어요. 1957년 소련(현 독립국연합)의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 성공으로 우주 공간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은 세계를 압도했습니다. 바로 그런 분위기 덕분에 이듬해 서울대에 한국 최초의 천문기상학과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마땅한 전공자가 없어 지질학과 정창희 교수(현 서울대 명예교수)가 임시학과장을 맡았고 천문에 대해서는 현 교수가, 기상에 대해서는 당시 기상청에 근무하던 김성삼 씨가 각각 맡아 가르치는 상태였다고 한다.

소백산천문대에는 24인치 반사망원경이, 대덕표준과학연구원 천문대에는 지름 14m 규모의 전파망원경이 설치돼 있으며 93년 초 우주의 3분의 1을 탐색할 수 있는 지름 1.8m의 광학망원경이 설치될 예정입니다.

또 몇몇 대학들도 기초적인 연구활동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장비를 갖추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천문학을 전공하고 외국 유학 경력을 가진 1세대 대학자군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등 이제 와서 국내 천문학계는 출발점에 섰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달력 제작 등 농경생활과 항해술 등 인류 생존을 위해 문명의 발달과 함께 성장해온 천문학은 이제 물질과 우주의 기원 및 원리를 밝히는 프런티어 학문으로 발전하고 있다.

천문학 연구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날로 세분화되고 있습니다.하지만 무엇보다도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외부의 은하나 별이 보내오는 전파를 포착하고 분석하여 지구 밖의 모습을 밝히려는 전파천문학이 가장 활기를 띠며 중심 분야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습니다.

현 교수는 지난 40년간 일도 못하고 세월만 보낸 것 같아 부끄럽다며 강의 부담에서 벗어나 책도 쓰고 우주론에 대한 공부도 더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현 교수는 대우학술총서의 하나인 현대 물리적 우주론을 쓰고 있다)

서울대 천문학과(총장 윤홍식)는 지난주 현 교수를 명예교수로 대학 당국에 추천했으며 다음 학기 이전에 명예교수로 추대될 전망이다.

달팽이도 내 집을 가지고 있는데 ① [출처 : 통일뉴스 2020.9.4.] 민족일보 다시 읽기 <147> [서울대 문리대 부교수 현정준 씨]

「손님 오지 않는 게 좋겠어요」교단 12년에 서재 같은 건 생각도 할 수 없다.

「…. 서재요? 원 최저 기본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무슨 서재를 갖겠어요?”

이렇게 반문하는 서울대 문리대 부교수 현 씨는 집을 살 생각은 아예 포기했습니다. 전셋집이나 독채를 빌리고 싶은데요. 최소 백만달러는 하니까 훨씬 먼 얘기죠.

교수 생활 13년에 어떻게 하면 서재를 하나 마련하지 못할까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책만 꽂아둔다고 서재가 아닌가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연구실 안에서 세월을 보내는 학자들에게 따로 연구비가 지급되는 것도 아니어서 작은 월급으로 생활비와 연구비를 합쳐 충당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 소유의 주택을 마련할 여유는 생각할 수 없다는 현 교수다.

저서의 인세 등도 없는 처지다. 연구 분야가 천문학인 ‘현’ 교수는 부산에서 서울대학교로 전임한 이래 3년째 동숭동 소재 문리대 교수 ‘합동 관사’로 우거하고 있다.

말이 관사일 뿐-8.15 이전에는 이공학부 독신교수들의 아파트여서 부엌도 없다. 8가구가 들어서 있는 이 아파트의 2층부터 다미 5장의 침실과 2, 3평 넓이의 마루 사이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 작은 세상에서도 나이가 인구 증가가 끊임없이 혼나네요. 하하하, 우리 집만 해도 네 식구인데. 손님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디 모실 자리라도 있어야겠죠?”

부산에 있을 당시 ‘현’ 교수는 빚을 내 80만 팬 집을 산 적이 있었다고-그런데 곧 상경하게 돼 다시 팔게 돼 원금과 이자를 갚기에도 부족했다고 쓴웃음을 짓는다.

재직 10년 뒤 퇴직하게 되면 집 한 채는 살 수 있는 금액이 공제회에서 급여된다는데 7, 8년 뒤 화폐 가치가 그것을 가능하게 할지는 적들이 의문이라고-아쉬운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현’ 교수는 자기 집을 소유한다든가, 그것을 대대로 바꾼다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하고, ‘이백의 춘야연 도리원서’에 이런 말이 있잖아요. 부천지자만물지역 여광음자백대지과객세상이 주막과 같다면 주택에 대한 것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땅은 좁은데 인구만 늘어나니까 도시만큼 아파트화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 상황에는 교수 ‘아파트’가 대학에 병설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다짐하면서 아이들에게 유산으로 집을 남길 수 없다면 각자 특기나 배워두기 위해 초등학교 재학 중인 두 아이에게 바이올린을 사줬다는 현 교수는 체념한 듯 오히려 태연한 미소를 짓는 것이었다. (컷은 현 교수의 서재 스케치)

(R기자)

<민족일보> 1961년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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