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그리고 필요한 걱정거리 미드<체르노빌>로 가는

보는 내내 어쩌자고를 남발하며 긴장했던 드라마를 끝냈다. 그동안 수많은 실화 원작 소설과 영화를 보았지만 그동안 나에게 실화라는 그런 일이 있다니 신기할 정도였는데 실화라는 말이 이렇게 무겁고 섬뜩할 줄이야. 보는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짜증이 나고 한숨이 많이 나오는 미드는 처음이었다. 어, 하지만 난 끝까지 본 미드(미국 드라마)는 이번이 처음이다.

<체르노빌> 이 작품만 봐도 워처 한달 이용권은 아깝지 않았다. 금요일 밤이나 주말을 하루 종일 정해 놓고 처음부터 끝까지(5편)까지 봐야 했는데 어젯밤 4편까지 보고 잔 게 아쉬웠다. 잠자는 동안 체르노빌의 꿈을 꿨다.

드라마 보는 내내 검색해봤어 체르노빌 어딨어? 한국과는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여전히 방사능 위험이 있지? 여기까지 닿으려나? 이곳은 뭐야, 이미 전 세계로 퍼져 있을 것이고, 그 영향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갑자기 내 자리가 너무 불안하고, 이렇게 욕심 많고 불완전한 인간이 이렇게 큰일을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는 모두에게 혁명가라고 꿈꾸듯이 말해. 아무것도 안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대. 결과에 겁을 먹고 포기하기보다는 무엇이든 해야 할 발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보이스 비 엔비셔스! 하지만 생각해보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 자연을 그대로 두는 것은 왜 나쁘고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우리는 얼마나 무모해질 수 있는가. 어떤 일이든, 특히 생명에 관계되는 일이라면 충분히 두려워하며, 수많은 플랜 b, c, d, e, f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그 중 하나라도 위험이 있으면 결코 실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감독님의 메시지는 이것이 아니겠지만, 이미 그의 메시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므로)

당장 검사결과를 보고하는 데만 혈안이 돼 기계와 동료들의 경고를 무시한 채 기계를 무리하게 작동하다 사고를 낸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책임자와 알 수 없는 폐렴 환자의 발생을 방관하다가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에 정신이 번쩍 드는 코로나 파티에 세계인을 불러온 중국 지도층은 뭐가 다른지 궁금하다. 몇몇 관리자에게 원전사고의 모든 책임을 떠넘긴 소련 정부도, 선장 한 명에게 세월호 침몰의 총알받이 역할을 시킨 한국 정부도, 무엇이 다른가.

실화가 주는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번 드라마로 나는 분명히 깨달았고, 이제 내가 쓰는 모든 전기와 에너지를 예전과 똑같은 눈으로 볼 수 없게 돼 혹시 전처럼 돌아갈까 두렵다.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평생 경계하고 검열하면서 사는 걸.

자신의 일을 열심히 수행하다 보니 일찍 죽은 사람들, 삶의 터전을 잃은 것도 모자라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당국의 협박에도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한 사람들이 있으니 매우 감사하다. 지금 내가 살아 열 손가락을 움직이며 이런 쓸데없는 리뷰를 남길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사람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은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가. 물론 저는 제 인생에서도 제대로 살아가지만 그래도 감사는 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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