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할 때는 태양계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떨까.

비를 기다렸다가 비 소식이 빗나갈까 봐 초조했고, 막상 비가 오면 금방 그칠까 봐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그렇게 어리석게 며칠을 보냈다.

오늘 아침은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 저기압 때문이겠지. 인생에서 학습해 온 모든 경험이 몸에서 벗어나 버린 것처럼 아주 쉬운 일도 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데카르트식 회의가 이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은 곤란하다. 걸음걸이부터 말투까지 처음부터 다 배워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전철을 타고 멀리 출근해서 학생들에게 어려운 글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너무 잘 해냈어. 나는 웬만한 일로는 실전을 망치지 않아. 그런데도 아침에 느꼈던 그 무서운 마음이 싹 가시지 않았다.

퇴근하고 청소와 빨래를 했다. 침대에 누웠을 때 조금 울고 싶었는데 1시간 정도 자니 괜찮아졌다.

지구와 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달은 위성 중에서도 특히 크기가 큰 편인데, 모행성 크기로 비율을 계산하면 태양계에서 가장 큰 위성이 된다고 했다. 달은 매일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한다. 손톱이 자라는 속도로. 1년에 3.5cm 정도. 천체의 질서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 간단하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다. 우주는 정신이 아니라 물질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달은 빛이 아니다. 암석 덩어리야.

달에 남은 소행성 충돌의 흔적으로 미루어 볼 때 지구는 결코 안전한 곳이 아니다. 특정 시기 이후 소행성 충돌이 잦아지고 있다고 한다. (시간을 재는 척도가 우리의 수명과 비교할 때 엄청나게 크지만 말이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현생의 근심에 더해 태양계의 안전까지 걱정하는 것, 다른 하나는 태양계의 관점에서 현생의 근심을 사소하고 재미없고 거의 귀여운 것으로 취급하는 것. 후자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이것저것 감당하기 어려울 때는 인생을 철저하게 미학적 관점에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영원한 상 아래에서’의 인식이 아니더라도 ‘영원한 상’의 이미지를 불러일으켜 힘들게 짐이 많은 개체를 진정시킬 수 있다. 우리가 우주의 먼지라니 정말 다행이네요. 노동과 저축과 경력과 미래 설계 같은 것은 그저 한 번 해보는 게임일 뿐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를 하나로 묶는 날씨를 즐기는 것, 덧없음에 관한 시를 읽는 것, 유한하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존재를 위로하는 것, 오늘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것, 그리고 잊기, 음악 한 곡 연주하고 피아노 뚜껑을 닫아버리기, 잠자기, 꿈 꾸기, 하나의 꿈을 기억하고 10가지 꿈을 잊는 것.

조금 불안했지만 상반기에 읽은 책에 대해 천천히 물어뜯으며 안정을 찾았다. 책은 나의 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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