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의 누드 모델 / 허창열 – 2023년 전라매일 신춘문예 당선작

창문 안으로 햇빛이 들어온다. 벽에 옷이 걸려 있다. 날지 못하는 새처럼 벽에 붙어 있다. 화요일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 남편에게 내 작품의 누드 모델이 되어 달라고 요청한다. 남편은 흔쾌히 승낙해 준다. 나는 매주 화요일에 특별한 작품을 만든다. 특별한 작품이라 힘도 특별히 많이 든다. 그래서 나는 화요일 아침이 되면 몸 준비를 잘 한다. 생각나면 먹는 비타민도 꼭 챙기고, 밥이나 과일 등 먹으면 힘이 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 다 먹는다. 마음의 준비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잘 만들 수 있다고, 재미있게 만들자고, 맛있는 작품을 만들자고 스스로를 응원한다. 자, 이제 작품을 만들어보자. 누드 모델이니 발가벗기는 것은 당연하다. 남편은 온몸을 나에게 맡긴다. 네 멋대로 해라다. 웃옷을 벗기고, 속옷을 벗기고, 마지막으로 양말을 벗길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모델도 소개가 필요할 것 같아. 남편은 산이다. 산에는 나무와 꽃이 있고, 그에 따라 온갖 동물과 새, 그리고 나비가 날아온다. 산은 아무데도 가지 않는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남편도 그렇다. 남편에게 배우려고 아이들이 찾아온다. 요즘은 건강이 더 안 좋아서 모든 걸 정리했어. 평생 한 길만 걸어온 남편은 이제 겨우 휴식을 취했다. 편히 오래 그 자리에서 쉬었으면 좋겠어. 남편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내가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 목발을 짚고 있었지만, 그는 그다지 불쾌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더 불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 만난 그 순간이 가장 건강한 날이었다. 그의 말대로는 보이지 않지만 점점 더 나쁜 방향으로 나아갔다. 지금 그는 휠체어에 앉아 있다. 시간이 강물처럼 흐를 때 그의 몸 속에 있는 힘도 시간을 따라갔다. 강물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의 힘도 돌아오지 않았다. 내 손이 그에게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어. 이제 그는 눈물을 닦을 힘조차 없다. 하지만 그는 육체적 건강이 악화됐을 뿐이다. 정신적 건강은 누구보다 강하다. 어떤 순간에도 최선을 다한다. 그는 이제 큰 산이 되었다. 나는 그 큰 산을 모델로 매주 화요일에 특별한 작품을 만들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다. 화장실 문 바로 아래에 경사로를 설치한다. 작품을 화장실에서 만들기 때문이다. 작품을 만들 때 모델은 수동 휠체어를 탄다. 그것은 밖에서 타는 휠체어보다 조금 작다. 화장실 문이 작기 때문이다. 천으로 된 휠체어가 젖지 않도록 방수포로 덮어 씌운다. 이동식 리프터를 이용해 누드 모델을 수동 휠체어로 옮긴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부터 긴장돼. 여유 공간이 양쪽으로 2cm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휠체어가 들어서자 화장실이 꽉 찬 느낌이다. 뒤에 있는 욕조는 차라리 없는 게 낫다. 하지만 새것이라 잃어버리기엔 너무 아깝고 손님이 오면 쓸 수도 있어서 그냥 두었다. 내가 작품을 만들 때는 의자가 되어줘서 고마워. 한쪽 다리가 불편한 나에게 욕조 난간은 매우 편안한 의자다. 모델은 지금 휠체어에 앉은 채로 1시간 20분 가까이 포즈를 취해준다. 힘든 건 모델도 마찬가지다. 모델은 항상 어깨에서 바람이 술술 나온다고 한다. 혈액순환이 안 돼서 그런 것 같아. 그 바람을 잠재우기 위해 밧줄이 긴 물뿌리개의 물을 뿌리는 바람은 쉽게 잠들지 않는다. 몸 속 아주 깊은 곳까지 따뜻해야 잠을 잘 수 있다. 물뿌리개로 온몸에 물을 뿌리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일주일째 물맛을 못 보는 몸은 가뭄이 든 논처럼 말라 있다. 가뭄이 계속되려면 비를 흠뻑 맞아야 한다. 모델 몸에 걸렸던 가뭄도 비에 흠뻑 젖어야 한다. 바람이 잠들고 가뭄이 계속되면 모델의 몸이 신호를 보낸다. 온몸에 땀이 배어 김이 서리다. 준비가 잘 됐다. 이제 본격적으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손질을 하다. 온몸에 비누를 발라놓고 샴푸를 바른다. 나는 두 손으로 빠지는 곳이 없도록 신경 쓰면서 마사지를 해 줄 거야. 잘 불어야 다음 작업인 누르기가 쉽게 된다. 모델은 꽤 까다롭다. ‘빈틈없이’를 몇 번 부르는지 모르겠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작업이 멋진 작품이 되고 싶은 마음이라고 이해하면서도 잔소리로 들리는 것은 내가 아직 내 마음을 비우지 않았기 때문일까? 우리 둘이서 웃으며 살아가자··· 너와 나는 약 같은 친구야…” 갑자기 모델이 노래를 부른다. 이것은 아주 좋은 신호다. 모델이 내 작업에 만족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늦가을, 잘 익은 호박처럼 포근한 배를 밀어내기 시작할 때쯤이면 내 숨결은 거칠어지기 시작하고 손의 힘도 떨어진다. 제물이 먹고 싶다. 마침 이맘때면 어머니가 햅쌀이 담긴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내 마음속으로 걸어온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 바람이 전국적으로 불었다. 시골의 초가지붕은 슬레이트로 바뀌었다. 지붕이 바뀌었을 뿐이다. 나무로 된 부엌 문은 아무리 조심스럽게 열어도 ‘끼익’하는 소리를 내가 먼저 울렸고, 마루와 아궁이는 흙으로 되어 있었다. 아궁이 위에는 참기름을 바른 듯 윤기가 나는 솥 2개와 은빛으로 빛나는 양은 솥 1개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란히 앉아 있다. 대문 쪽에 있는 가장 큰 솥은 물을 데울 때 쓰고, 그 옆에 있는 참 솥은 밥을 지을 때 쓴다. 또 그 옆에는 국을 끓일 때 쓰는 양은솥이 있다. 가장 큰 솥의 입을 벌린 아궁이에는 장작이 한 아름이나 있고, 시뻘건 불길은 고래에게 무섭게 빨려들어가고 있다. 그 솥뚜껑 사이에서는 김이 나고 있다. 안방에는 샘에 있던 붉은 고무통이 가운데에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다. 멀리 떨어진 곳에는 접은 옷이 많이 놓여 있다. 개화된 옷은 낡아서 꿰맨 흔적이 그림처럼 곳곳에 있다. 2, 3세 떨어진 6남매는 모두 비슷비슷하다. 엄마는 하룻밤에 목욕을 모두 시키기가 힘들어 이틀에 나누어 부탁한다. 어머니가 할 설 준비 중 가장 힘든 일은 6남매를 목욕시키는 일이다. 혹 감기라도 걸릴까 어머니의 몸과 마음은 바쁘기만 하다. 장작불창 속으로 햇빛이 들어온다. 벽에 옷이 걸려 있다. 날지 못하는 새처럼 벽에 붙어 있다. 화요일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 남편에게 내 작품의 누드 모델이 되어 달라고 요청한다. 남편은 흔쾌히 승낙해 준다. 나는 매주 화요일에 특별한 작품을 만든다. 특별한 작품이라 힘도 특별히 많이 든다. 그래서 나는 화요일 아침이 되면 몸 준비를 잘 한다. 생각나면 먹는 비타민도 꼭 챙기고, 밥이나 과일 등 먹으면 힘이 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대로 다 먹는다. 마음의 준비도 마찬가지다. 오늘도 잘 만들 수 있다고, 재미있게 만들자고, 맛있는 작품을 만들자고 스스로를 응원한다. 자, 이제 작품을 만들어보자. 누드 모델이니 발가벗기는 것은 당연하다. 남편은 온몸을 나에게 맡긴다. 네 멋대로 해라다. 웃옷을 벗기고, 속옷을 벗기고, 마지막으로 양말을 벗길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모델도 소개가 필요할 것 같아. 남편은 산이다. 산에는 나무와 꽃이 있고, 그에 따라 온갖 동물과 새, 그리고 나비가 날아온다. 산은 어디에도 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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