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에 저게 도대체 뭘까 하는 생각에 신나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다툼을 만들어내지 않는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닙니다, TV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을 바꾸는 영향력을 갖는 것도 아니다, 그런 것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 수백 년이 걸리는 곳에 한없이 전파를 흘리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해.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프롤로그에서)
8월 3일 한국도 달 탐사선을 발사한다. 이름은 “다누리”.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 달 탐사국이 된다. 다만 한반도 외나로도에서 직접 발사할 수 없는 미국의 NASA로 옮겨 발사한다. 한국의 달 탐사선은 착륙하지 않는다. 달 주위를 돌며 달을 탐사한다. 달 착륙선은 2031을 발사할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과학자 중에 심채경 박사가 있다. 이 책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의 저자다.
달 탐사선 다누리(사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공식 블로그)
우주를 보는 천문학자, 드넓은 높은 산에 위치한 천문대에서 별을 보는 것 같은데 그는 연구실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별을 보지 않는다. 천문학을 배우고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으로 연구소에서 일하는 얼핏 평범한 과학자. 하지만 평범해 보이는 과학자의 일상이 결코 쉽지 않음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천문학자가 하는 일을 대중 에세이로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천문학에 관한 이야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여성 천문학자로서, 여성 과학자로 사는 애환을 담담한 문체로 써내려갔다. 하늘을 연구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지상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 안정적인 일자리, 아이 키우는 것 등에 대한 민원이 적지 않다.
비정규직 과학자로서 연구가 종료되기 전 다음 과제를 따내기 위해 준비한다는 이야기, 여성 과학자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푸대접 등을 묵묵히 견뎌 나간다. 견디다라는 말이 적합하다. 감내해야 할 상황은 계속된다.
일부 사람들은 이소연을 한국 최초의 우주인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전 국민의 관심 속에 선발된 우주인이 갑자기 교체된 것도 당혹스러웠던 데다 여성 우주인이 나서게 되는 것을 반기는 시선이 더해졌다. 여성 우주인이 남자 우주인 옆에 후보했는데 역사적인 발사 순간에 손뼉을 치며 환호해 주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보기 좋은 그림이었다. 다카야마가 이소연으로 교체된 사건은 남자의 자리를 여자가 대신한다는 충격으로 번졌다. (p100)
나는 한 여교수를 혼자 은근히 존경한다. 분야가 다르다 보니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드물지 않았는데 언젠가 그 학과 대학원생을 우연히 만나 “그 교수님 어떠세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남초사회에 정착한 여성 과학자는 언제나 호기심과 부러움과 부러움의 대상이다. 어떤 성향인지, 연구 스타일은 어떤지, 강의는 어떻게 하시는지, 요즘은 주로 뭘 연구하시는지 그런 게 궁금했다. 그런데 저에게 돌아온 대답은 “글쎄요.아이가 아프다고 학교에 안 올 때도 있어요. 내 생각에 정년을 앞두고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자기 대학원생을 항상 자랑스러워하는 멋진 교수인데 고작 그런 시선이라니.(pp.107108).
여성 우주인 이소연에 대한 세간의 편견도 상세히 기술돼 있다. 이소연의 전공이 우주선에서 수행해야 하는 연구에 적합하기 때문인데,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남자 우주인이 탈락하면서 세상의 편견에 적나라하다. 무엇보다 여성 우주인 이소연이 해야 하는, 해온 연구와 아무 상관없는 인터뷰라도 하기 위해 세월을 보내야 했던 상황, 견디지 못해 결국 유학을 갔고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했을 때는 그가 우주에 다녀오게 하는 데 들어간 비용이 세금이니 뱉으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이들은 모두 여성 우주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간략하게 재단하고 억눌렀던 차별세상은 천문학적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남아 있는 편견을 조목조목 날카롭게 지적한다. 절대 흥분하지 않는 목소리로.
그래도 글은 무겁지 않다. 과학적으로나 사회비판적으로나. 그야말로 침대에 누워서 읽고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것 외에 직업처럼 붙어 있는 편견과 불안정함을 견디는 데 무난한 과학자의 담담한 에세이로 읽었다.
열정적이고 무해한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 수백 년이 걸리는 곳에 끝없이 전파를 흘려 우주 전체에 과연 우리뿐인가 하는 생각을 깊이 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해.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그냥 엉덩이를 붙이고 모니터 앞에 오래 앉아 있는 것, 조금 전까지 137번 정도 해 본 것을 138번째로 다시 해보는 것. 중간에 그만둘 수 없었던 것은 떠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은 채로 버티는 데도 역시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다. 떠난 사람들은 남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남지 않는 것을 선택한 것이고, 남은 사람들은 떠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떠나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알 수 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
과학자 심채경은 선배 과학자들이 열정적이고 무해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길로 들어서고, 그가 하는 일이라는 게 엉덩이를 무겁게 차고 수백 번이나 한 일을 무심코 다시 하는, 그러다 보면 하는 발견을 사고를 당하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그렇게 심채경 박사는 국내 유일의 타이탄 전문가가 된다.
여성 과학자 김빛내리 교수를 떠올린다. 그가 흔들림 없이 여성 과학자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여성 선배로서 길을 잘 가야 한다는 스스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서산대사의 선사 눈 내린 산길을 함부로 걸어서는 안 된다. 오늘 네가 남긴 발자국은 뒤에 오는 사람의 길이 되기 때문이다.” 를 마음에 품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글 끝에 심채경 박사는 네가 발을 떼면 사방이, 아니 만방으로 길은 열릴 것이다. 스무 살, 스물한 살은 그런 말을 들어야 할 나이라는 말로 후배들에게 용기를 준다. 그렇게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만의 의견을 갖는 보람을 발견하고 받아들이고 눈을 들어 앞으로 나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라고 거기에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함께 있다는 조언도 함께.
달에 집을 짓는다면 지구로 향하는 창문을 낼 것이다. 창문이 금방 생동하는 액자가 될 테니까.이 꿈이 이루어지길.
서평을 쓴 과학자 김상욱은 천문학을 다룬 글은 문학과 같다고 평했다. 천문학은 문학이니까라는 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