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암입니다. 네, 결국 이렇게 됐어요
잊을 수가 없네.교수의 눈빛과 낮은 어조와 조용했던 진료실.
나 암 환자라고? 암? 캔서 그거?
처음 겪는 일인데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대부분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왜 나야? 하고 원망을 듣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에 암 같은 건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무슨 근거인가.누구나 걸릴수도 있고, 당연히 나일수도 있었는데 왜 나는 안걸릴줄 알고 살았을까..ㅎ
지난해 9월 23일.
매년 건강검진을 통해 자궁, 유방, 갑상샘 초음파를 보러 갔다.갑상샘에 결절 모양이 좋지 않아 세침검사를 해야 한다.무심코 옷을 갈아입고 대기하는데 목에 주사기를 꽂아 세포를 흡인해서 하는 세포 검사란다.
주사를… 목이요?저는 우주최강의 겁쟁이에요
이때는 오로지 목에 주사를 놓는 것에 겁을 먹고 부들부들 떨었던 것뿐.
1주일 뒤 비정형 세포 카테고리 3단계가 나와 3차 병원에 가거나 3개월 뒤 재검하자고 했다.의사가 자기 친언니라면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말씀하셔서 즉시 길병원을 예약했다.이날 너무 무서워서 수납을 하고 화장실에 가서 한참 울고, 주차장에 가서 한참 울고, 기다리던 오빠 만나고 또 울고.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던 나날들.
10월 6일.
길병원에 진료의뢰서와 초음파CD를 가지고 가서 예약했더니 처음엔 내분비대사내과에 예약을 해줬다.내분비내과 교수님이 초음파 영상을 보자마자 갑상샘암 같다며 바로 타과의뢰서를 써주셨다.하필이면 엄마를 데려가는 바람에 거드름을 피우려고 했지만 훌쩍훌쩍 울어 엄마가 당황스러웠다. www
갑상샘과는 따끔따끔 암센터에 있었다.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감은 너무 무거웠다.다행히 갑상샘과 교수를 만나 진찰을 받았고 다음 진료 때 세포검사 슬라이드를 가져오라고 했다.
병원을 나오자 갑자기 긴장이 풀려 엄마에게 파스타를 사달라고 하고 폭식을.이날 엄마한테 재해지원금 받은 걸 다 써버렸어.(웃음)
10월 13일.
슬라이드를 제출하고,
10월 20일
결과는 똑같이 비정형 세포 3단계.보통 3단계가 나오면 100명 중에 7명이 암일 확률이 있다고 했는데 저는 7%였다니요.
어쨌든 3단계이기 때문에 3개월 후에 재검하기로 했다.목 안에 암이 있는 것 같은데 3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는데 왠지 3개월을 벌었다는 생각에 열심히 놀면서 잘 지냈다.
12월 16일.
3개월 뒤 세침검사 재검과 함께 유전자검사까지 했다.아니 근데 길병원은 세침검사에 마취를 안 해무서워서 기절할 뻔했어근데 얼마나 정신력이 강한지 기절도 안하는 나라는 여자. (웃음)
12월 22일.
결국 갑상샘유두암 진단을 받았다.
세침검사 결과 암이었고 유전자검사 결과도 암이었다.존나가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안 들리는데 당신은 암입니다는 왜 선명하게 들리는지.
모든 정황이 암이 확실하다며 즉석에서 산정 특례등록을 해주셨다.아… 이렇게 갑자기요?보통 수술한 후에 등록한다던데?나는 암이야.
그렇게 해가 바뀌기 전에 조금 더 일찍 암 환자가 됐다.
당일 채혈, 심전도, 골밀도, 흉부 X선까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검사할지 당혹스러웠지만 검사를 마치고 수복이에게 커피 한 잔 마시려고 들렀더니 눈물이 줄줄 흐르고 콧물이.
오빠는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갑상샘 수술은 평준화되어 있고 서울도 인천도 집과 가까운 게 최고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형이 몇 번을 말해 고민도 좀 하다가 수술 후 외래나 혹시 나중에 문제가 있을 때는 응급실 근처를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그냥 길병원으로 옮겼다.교수님도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너무 피곤하고 귀찮았다.이 상황에서도 귀찮다니, 자신에게 좀 질려서(웃음)
‘오빠가 돼야 되는데 내가 왜 걸려?’ 그랬더니 그렇구나 하면서 다 받아주는 남편이 이렇게 든든할까 봐 서하도 걱정되고고개를 들었다 내렸다 해일이 밀려온다. 울고 웃고 떠들면 형이 정신과 협진을 넣어야 하는거 아니냐고 한다. www
그날 엄마 아빠 보고 싶어서 엄마 집에 갔는데 엄마 앞에서 “응 괜찮아~ 수술하면 돼~” 이렇게 강세를 부렸는데 무서워하는 동생을 보면 눈물이 나고 슬프고 무서워서
그렇게..마음에 평정심을 되찾으며 생활하다보니 날이 바뀌고 수술날이 가까워졌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더라도 긍정적인 생각이 솟아날 수도 있다.
주변 사람들이 갑상샘암은 착한 암, 거북이가 암이라고 위로해 주었는데 이게 웬 농담인가. 암인데 착한게 어딨니?나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큰 아픔이고 슬픔이야.
갑상샘암은 암도 아니고 수술이 아닌 시술이라는 사람도 있었다.물론 내 마음을 가볍게 해주려는 위로였는지 모르지만 정말 어이가 없어서 웃음보가 터져버렸어.(웃음)
난 매일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두려움에 떨어.앞으로 어떻게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할지 막막하고.내가 소하에게 가족력을 남겼나?하는 죄책감에 잠을 설쳤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말만 나도는 날도 있다.별일 아니었으면 해서.희망과 용기가 생기기도 한다.
뭐 어쩔 수 없지.
수술 잘받고, 잘 회복해서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야돼. 그래서 가족들과 여행도 가고, 파티도 해야돼.내가 좋아하는 방탈출 게임도 있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으러 다니기에는 바빠.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