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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 슈의 모든 것, 2001》

하스미 유이치(이치하라 하야토) 가수 릴리 슈슈를 좋아하는 중학교 2학년 평범한 남학생. 릴리 슈슈의 비공식 팬사이트 릴립시리아를 운영한다. 어머니와 양아버지, 그리고 다른 핏줄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호시노 슈스케와 절친한 친구였지만 오키나와 여행 후 급변한 호시노에게 심각한 괴롭힘을 당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첫사랑 쿠노도 괴롭힘을 당하지만 그녀를 돕기엔 자신의 슬픔을 견딜 수도 없다. 소년의 유일한 안식처는 영혼을 뒤흔드는 릴리슈슈 노래뿐. 그러나 현실은 노래로 가릴 만큼 달콤하지 않다.

호시노 슈스케 키도 크고 운동도 잘하는 모범생이었던 학생. 중학교 입학식에서 신입생 대표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오키나와 여행 이후 극심한 변화를 겪으면서 사람이 완전히 돌변해 동급생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여학생의 약점을 잡아 원조교제를 시키는 등 범죄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른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여름방학 중 아버지의 회사가 도산하고 가정이 붕괴되었다고 한다.

츠다 시오리 호시노 슈스케에게 원조교제를 강요당하는 소녀. 함께 괴롭힘을 당하는 처지인 하스미와 잠시 친구가 된다. 왕따로 인해 자유롭게 날고 싶어한다. 하스미에게 릴리 슈슈의 CD를 빌려 가면 그녀의 세계에 푹 빠진다.

쿠노 요코(이토 아유미) 클로드 드뷔시의 어려운 곡을 피아노로 완벽하게 연주하는 중학생 소녀. 방과 후 음악실에 남아 늘 피아노를 연주하지만, 동급생 동료들에게 휘말려 심한 학교폭력을 당한다. 초등학교 시절 호시노 슈스케의 옛 짝사랑 상대이기도 하다. 그리고 호시노에 릴리 슈슈를 전파한 인물이기도 하다.릴리 슈슈, 왕따의 도피처

팬셔틀이 된 하스미 호시노는 나머지 3명을 괴롭힌다. 소꿉친구 하스미는 팬셔틀에서 혹사당하고, 츠다에게는 원조교제를 시켜 히사노를 아이들에게 시켜 성폭력을 가한다. 아이들은 “릴리의 에테르에게는 특수한 힘이 있어 우리의 마음을 치료해 달라.”며 릴리 슈슈(혹은 드뷔시)의 음악을 들으며 이 지옥 같은 괴롭힘을 견디고 있다. 릴리는 드뷔시의 버려진 첫 번째 아내의 애칭이고 슈슈는 둘째 아내의 딸 이름을 따왔다.

가수 릴리 슈슈의 싱글 ‘엘로틱’의 주인공 하수미는 릴리 슈슈의 팬카페를 운영하며 채팅을 통해 아픔을 공유한다. 넷상에서 「푸른 고양이」라고 하는 유저와 응원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서로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릴리슈슈를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하나 서로 공감한다. 연실은 현실과 동떨어진 채 오프라인을 통해 세상에 고통을 고한다. 현실에서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을 나누다. 학교 생활이 어려워질수록 릴리 슈슈에 집착한다.

만삭의 어머니를 태우는 연실은 릴리의 가족관계에서 동질감을 느낀다. 릴리 슈슈는 어머니가 재혼하게 됐고, 양아버지는 일을 핑계로 릴리를 돌볼 수 없었고, 어머니는 그녀를 차갑게 대해 이복동생과도 어색해졌다. 혼자 방에서 에테르를 느낀 그녀는 음악적으로 각성하게 된다. 그 사춘기 감성을 집약한 ‘엘로틱’이라는 싱글에 그녀가 고독했던 순간을 봉인돼 있다고 한다. 에테르는 여기서 감성의 촉매를 뜻한다. 팬들은 에테르를 “우리가 하찮은 존재라 할지라도 살아가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힘….”이라고 정의한다.
그녀의 음악 속에는 ‘에테르’라는 감성의 촉매가 녹아 있어 하수미는 이곳에서 그녀와의 일체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물리학에서 빛의 파동을 전하는 매질을 에테르라고 한다. 음악에도 그 감성을 전달하는 매질이 있는 것이다. 그 에테르를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호시노는 왜 타락했을까.

중학교 입학식에서 학생 대표로 나설 정도로 모범생인 그는 왜 왕따를 주도했을까. 초등학교 때 부자 도련님이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게 된다. 릴리슈슈의 노래에 빠진 지점이기도 해 친구 연실에게 릴리슈슈를 추천하기도 했다.

호시노를 공격한 물고기 오키나와로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면서 그는 180도 바뀐다. 어떤 계기였을까? 호시노는 오키나와에서 세 번의 죽음과 마주하게 된다. 이들이 들고 다니는 핸디캠 ‘소니 HDW-F900’으로 그 불안을 포착한다. 호시노는 밤바다를 보러 가다 바다에서 튀어나온 긴 부리를 가진 갈치에게 습격당할 뻔했다.
죽을 위기를 가까스로 넘긴 호시노를 다음날 오키나와에서 만난 다카오 여행자(오사와 다카오)라는 아저씨가 산호초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죽이는 과정을 갖고 있어 덩굴은 나무에 싸여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나무를 졸라 죽인다며 자연에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있다고 알려준다.

응급조치로 힘겹게 살아난 호시노, 그리고 가오슝은 “그쪽으로 가보면 ‘아라베스크’를 닮은 섬이 있다”고 말한다. 릴리 슈슈의 가사에 있던 아라베스크여서 호기심에 호시노는 무작정 바다로 뛰어든다. 다행히 물에 빠진 호시노를 빨리 구해 응급조치한 덕분에 목숨은 건졌다. 꿈(이상향)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는 실의에 빠진다.

가해자의 부인은 끝까지 발뺌한다.그 절망감이 한층 깊어지는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피해자가 놀랍게도 다카오였다. 숲에서 갑자기 차가 몰려와 멈춰섰지만 차주의 아내가 뻔뻔스럽게 “우리는 나쁠 게 없다”고 강하게 부인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오키나와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세상은 약육강식이라는 명제를 각인시킨다.

친구를 괴롭히는 호시노 2학기가 시작된 날 이누부시 에쓰야(사와키 테츠)라는 불량한 친구가 아이들을 괴롭히면 호시노는 초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한 채 돌려준다. 그러면서 그 자신이 왕따를 주도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독재적 태도 때문에 그는 또 그룹 동료 구성원들에게 불만이 쌓인다.
호시노가 급변한 것은 아버지의 사업이 망했기 때문인지, 오키나와에 영혼을 두고 왔기 때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영화는 중요한 맥락을 일부 생략함으로써 그로 인해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주목하도록 이끈다. 피해자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호시노가 가해자가 된 것은 충격적이다. 그가 괴롭힘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든 쉬운 친구를 이용해 자신들의 우월감과 공격성 해소, 쾌락 등을 충족시키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자기합리화한다고 해도 이는 다수의 횡포이자 엄연한 범죄다.괴롭힘을 당하는 두 아이의 엇갈린 선택

츠다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어한다.영화에서 주인공들은 혼자 있는 장면이 많다. 고립감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특히 츠다의 단독샷이 많다. 푸른 하늘을 날고 싶어했던 그는 겉으로는 씩씩한 척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고립돼 있다. 호시노는 하스미에게 히사타와 츠다를 괴롭힌다. 호시노는 자신의 앞자리에 앉은 히사타를 짝사랑하면서도 츠다에게 연민을 느끼면서도 호시노에게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자신을 탓한다. 그 죄책감 때문에 츠다를 정의의 반장과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한다. 그녀는 그 고백을 받아들일 수 없다.

호시노에게 스트레이트 고백을 하는 쓰다 아쉽게도 츠다는 함께 괴롭힘을 당하는 호시노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녀는 호시노가 히사타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 적극적으로 대시하지 못한다. 그 고립감 속에서 푸른 하늘을 날고 싶어 했던 소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만다.


쿠노를 거느린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호시노가 쿠노를 짝사랑하며 왕따를 가한다는 점이다. 물론 불량 소녀들의 청탁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똑똑한 사람들을 시켜 짝사랑하는 그녀를 성폭행한다는 점이다. 이율배반적인 감정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게다가 연실에게 그녀를 공장으로 데려오는 역할을 맡긴 것도 잔인했다. 다음날 하스미 앞자리에 삭발을 한 히사노가 앉는다. 이때 연실은 크게 동요하고 죄책감에 시달린다.

쿠노는 왕따에 삭발로 대응한다.쿠노는 삭발을 했지만 머리카락은 언제든 다시 자라기 때문에 그녀의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쿠노는 드뷔시를 연주하며 그날의 상처를 씩씩하게 스스로 극복한다.소통이 단절된 아이들이 온라인으로 모인다.

담임은 성적 부진을 이유로 연실에게 주의를 준다.”요즘 아이들은 어떤 생각으로 사는지 모른다”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어른과 아이들의 세상은 분리돼 있다. 아이들과 어른은 단절되어 있다. 선생님은 사무적으로 아이들을 대할 뿐 인간적인 유대를 맺고 있지 않다. 극중 아이들을 위로하는 어른은 릴리 슈슈뿐이다. 그 음악에 흐르는 에테르를 공유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릴리 슈슈팬끼리 소통한다.
이처럼 아이들은 현실에서는 각자의 세계의 문을 닫고 있었지만 온라인에서 아이들은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털어놓는다. 그것이 상처 슬픔 고민 고통 아픔이든 인터넷 공간에서는 마음껏 마음을 연다. 서로의 고통을 서로 위로하다. 현실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일지라도 말이다. 영화의 핵심은 호시노가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위장했다는 점이다. 또 팬카페에서는 하수미를 위로해주는 파란 고양이(별명)라는 점이다. 병을 주고 약을 주는 호시노는 1차원적인 악당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물론 교실에서는 친구들끼리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상대방에 대한 ‘폭력’이라는 왜곡된 방식을 통해서만 관계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고자 한다. 이것이 비극의 단초가 되는 혐오로 해결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호시노도 팬카페에서 푸른 고양이로 활동한다.호시노는 행복하지 않다. 그에게는 대화를 나눌 친구가 한 명도 없다. 엄마들은 뒷담화로 불만을 품고 있고 가정은 풍비말산이 됐다. 외로움에 릴리 슈슈의 노래로 위안을 얻고 팬카페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것이다. 온/오프라인의 이중성은 영화만이 아니라 한국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게임과 SNS에서 ‘~벌레’라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모습은 매우 흔하다.

들판에서 안타까운 속내를 외친다 릴리 슈슈의 콘서트 장면에서 팬들은 ‘카야마 카츠히로’와의 듀엣 <필리아>를 인정하자 잔뜩 옥신각신하고 있다. 릴리의 감성이 전해지는 매질인 “에테르가 더러워진다”며 솔로 활동만 인정하는 팬들의 광경을 보게 된다. 연실도 듀엣 시절을 제외하고 솔로 앨범만 인정한다.
하스무의 정신적 도피처(팬카페)는 에테르라는 완벽한 이상세계를 구축한다. 에테르에게 가산의 감성이 전해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릴리의 세계에 가산이 침입한 것 같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것을 용납할 수 없는 단호한 태도는 그만큼 자신만의 이상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히사노는 음악의 힘으로 이겨낸다. 왜냐하면 그 이상이 부정되면 비겁한 자신을 직시해야하기 때문이다. 현실에 순응한 자신이 도망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왕따에 굴복해 버린 자신을 구해 주는 릴리만은 순수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인터넷상에서 자신을 위로해준 ‘파랑 고양이’가 가해자라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그토록 믿었던 유저가 ‘호시노’라는 사실을 부정하게 된다. 현실을 왜곡함으로써 자신은 면책받고 싶은 심리적 모순이 발생한다. 이것이 청소년 일탈 또는 SNS 혐오 문화의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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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파수꾼>이 있다면, 일본에는 이 영화가 있다.Caution : 학창시절에 나쁜 기억이 있다면 절대 보지 마세요.
■음악은 일본 프로듀서 고바야시 다케시가 맡았으며 Salyu가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