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인생에 별을 꿈꾸다
자살로 마감한 고흐의 37년 짧은 삶은 가난과 고뇌, 조현병으로 물들었다.마음 둘 곳 없이 고통스러운 세상 끝에서 올려다본 밤하늘, 그것은 고흐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고흐는 Vincentvan Gogh(18531890)는 특히 별을 좋아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 중에는 <별이 빛나는 밤>, <롱강의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테라스> 등 밤하늘과 별을 표현하는 그림이 많다. 고흐는 별을 보는 것은 언제나 나를 꿈꾸게 한다고 말했다. 마음 둘 곳 없이 지쳐 있던 그의 인생에 밤하늘의 별은 단 하나의 편안한 꿈의 안식처였는지도 모른다. 많은 미술사학자들이 고흐의 별 그림에는 종교적 감정이 내재되어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고흐가 그림을 그리면서 우주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고 비극적 현실을 벗어나 초월적 세계로 향하는 몽상 속에서 위로를 받았음을 의미한다. 한편 고흐의 밤하늘을 그린 그림에 흥미를 느낀 천문학자들은 그의 작품을 천문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하려 했다.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 9년 ‘별이 빛나는 밤’과 소용돌이치는 별
고흐의 삶은 불행과 불운의 연속이었다. 잇달아 실패한 사랑, 가족과의 불화, 성직에 대한 소망의 좌절, 평생 인정받지 못했던 예술성, 그리고 빈곤, 1889년에는 고갱과의 불화로 자신의 귀를 베어 생레미의 정신병원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병원 창문을 통해 보이는 생마리 마을의 밤하늘을 그린 <별이 빛나는 밤>은 고흐의 후기 걸작으로 꼽힌다. 고흐는 정신질환, 조울증, 간질 등의 정신질환을 앓은 화가여서 이 작품을 비롯해 많은 그림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순식간에 그려졌다고 자주 전해진다. 하지만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작품 하나하나를 자세히 설명하는 데서 드러나듯 그는 항상 자연에 대한 꼼꼼한 관찰과 스케치를 통해 치밀한 계획을 세운 뒤 그림을 그렸다.그림 속의 달은 별이 빛나는 밤 단계다. 달의 왼쪽이 밝고 지평선 근처에 있어 이 그림은 해가 뜨기 직전 새벽 시간대의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보름달이 떠 있는 것으로 보아 동쪽이요, 따라서 고흐는 동쪽을 향해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새벽 시간과 지평선에 가까운 섣달 그믐날 위치로 볼 때 사이프레스 나무 오른쪽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은 금성으로 추정된다. 이 그림에서 정확한 별이나 별자리의 이름을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금성과 사이프레스 위의 별은 대개 양자리, 달의 바로 왼쪽은 물고기자리로 추정된다.그런데 고흐가 테오에게 쓴 편지에 따르면 이 작품은 6월 18일경 그려진 것으로 보이지만, 계산해 보면 실제로 이날은 섣달 그믐날이 아니라 상현을 통해 떠오르는 달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고흐가 인위적으로 기억 속의 밤하늘을 상상적인 혼합체로 섞어 그린 것으로 보인다. 자연을 관찰하고 묘사하더라도 객관적으로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자신의 내적 감성과 종교적·영적 감각에 따라 각색하고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카미유 플라밀리온, 『대기권:일반 기상학』에 실린 목판화, 1888년의 고흐는 천문학 지식을 그림에 반영한 것일까.한편 미술사학자 앨버트 보임과 천문학자 찰스 휘트니는 각각 밤하늘을 그리기를 좋아하는 고흐가 천문학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으며, <별이 빛나는 밤>은 당시 인기 있던 천문학 관련 출판물에 영감을 받아 그린 것이라는 공통된 주장을 펼친다. 즉 이 작품의 별과 은하수는 19세기 천문학자이자 SF작가 카미유 프라마리온이 저술한 대기권 일반기상학에 실린 목판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 목판화는 15, 16세기경 제작된 미상의 작가로 중세의 수도사처럼 보이는 인물이 하늘 끝을 향해 나아가려는 환상적인 장면을 담고 있다. 천구의 윗부분에는 수많은 별과 달, 태양이 있고 천구를 뚫고 나온 사람의 머리는 신성한 빛으로 가득 찬 미지의 신세계를 보고 있다.휘트니는 또 영국 천문학자 로스 백작이 그린 나선형 은하 스케치가 고흐의 소용돌이치는 별들의 움직임과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부유한 로스 백작은 스스로 거대한 반사망원경을 만들어 소용돌이 은하를 관측하고 스케치했는데, 이는 나선형 은하의 소용돌이 모양을 시각적으로 보여준 최초의 자료다. 이 스케치는 당시 신문, 잡지의 삽화를 통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고흐도 보았을 가능성이 높으며 나선형 은하를 자신의 그림 속에 재현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실제로 우주의 적지 않은 천체 사진에서 이 작품의 소용돌이 모양과 비슷한 형상이 발견된다. NASA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닮았다며, 겨울의 밤하늘에 보이는 외뿔수자리의 V838의 천체 사진과 해류의 움직임을 이미지 한 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유럽 우주국들도 비슷한 의도로 마젤란 은하의 사진을 대중에게 공유했다.이에 대해 사람들은 고흐가 자연과의 영적인 교감을 통해 우주의 비밀을 알아내고 작품 속에서 직관적으로 표현했다고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화가의 능력에 대한 일종의 신격화 또는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다. 고흐의 소용돌이치는 형태는 단순히 그의 극심한 내적 갈등과 고뇌가 표현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따라서 천체와 억지로 연결시키기보다는 고흐의 심리적 표출에 초점을 맞춰 분석해야 한다.
우리는 별에 닿기 위해 죽는다.<별이 빛나는 밤>에서는 마치 격렬하게 물결치는 것처럼 보이는 짧고 비연속적인 필치의 소용돌이 패턴과 흰색과 노란색의 동심원에 둘러싸인 별과 달 등 역동적인 밤하늘 움직임이 화면의 5분의 2를 차지한다. 고흐 특유의 강렬한 붓터치의 노란색과 에메랄드 블루의 대비 때문에 그림은 더욱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이처럼 수많은 별들이 생동감 있게 소용돌이치는 밝고 화려한 하늘과는 달리 그 아래 보리밭과 올리브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작고 어두운 정적에 싸여 있다. 스스로 자기 귀를 잘라 아를의 매춘부에게 넘겼다가 그녀의 신고로 병원으로 이송된 이 화가를 사람들은 미친 네덜란드 남자 혹은 미친 빨간 머리로 부르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들의 따가운 시선은 고흐에겐 또 다른 좌절이었을 것이다.따라서 고흐의 마음 속에 마을 혹은 세상은 어둡고 작게 그리고 싶은 부분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고흐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구애하던 여성에게 거절당하고 매춘부에게서만 위로를 받았다. 벨기에 광산촌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목사가 돼 최선을 다했지만 그들에게도 외면당했고 사랑하던 고갱과의 사이도 틀어졌다. 고흐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고 세속적인 것에 무관심한 칼뱅식 엄격한 금욕주의자로 어쩌면 너무나 순수한 정신세계를 가졌기 때문에 세상에 섞여 원만하게 살기 어려운 사회부적응자였는지도 모른다.마을 왼쪽의 사이프레스 나무는 세계와 하늘을 잇는 다리처럼 높이 자라고 있다. 고흐는 이 나무가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이 화합할 수 없는 세상을 떠나 저 초월적 세계로 향하는 관문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하늘을 향해 검게 타오르는 듯한 사이프레스 나무는 매우 강렬한 색채와 물결 모양의 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나무는 보통 무덤 주변에 심어져 죽음, 애도 등을 상징한다고 한다. 고흐는 불안정한 정서와 죽음에서만 얻을 수 있는 안식에 대한 염원을 그림 속에 표현하지 않았을까. 한편 가늘고 왜소한 교회의 첨탑도 하늘을 향해 뻗어가고 있는데 이는 목사가 되려다 실패한 경험에 대한 좌절감의 표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고흐는 밤하늘을 별이 있는 장엄한 하늘, 결국은 신으로만 볼 수 있는 영원한 세계라고 말한 적이 있다. 왜 하늘의 빛나는 점은 프랑스 지도의 검은 점처럼 닿지 않을까. 탈라스콘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듯, 우리는 별에 닿기 위해 죽는다고 말했듯이 고흐는 죽음이 별을 보러 가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1889년 5월 8일 선=레미의 정신병원에 들어간 고흐는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을 비롯해 150점의 유화와 140점의 드로잉 작품을 제작하는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한다. 그러나 그가 바라던 정신적 평화와 안정을 아름다운 자연풍경과 열정적인 창작열 속에서도 끝내 찾지 못한 듯하다. 1890년 5월 병원에서 퇴원해 오베를 슐와즈로 거주지를 옮기지만 7월 27일 쇠약한 몸과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고단한 삶을 스스로 마감한다.
<롱강의 별이 빛나는 밤>의 별자리, 그리고 밤의 색채
<롱강의 밤하늘의 밤>은 파리에서 알로 이주한 후 그린 그림이다. 고흐는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이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별들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맑은 날씨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감추고 있는지. 두 남녀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다. 나를 꿈꾸게 한 것은 저 별빛이었을까. 밤하늘 캔버스는 초라한 범선처럼 나를 어디론가 싣고 가는 듯하다. 테오, 내가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을까?” 이 편지를 통해 고흐가 화가로서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거친 세상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으며 밤하늘의 별들이 상징하는 초월적인 세계를 동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여느 때 같으면 별빛이 빛나는 강변의 두 연인은 낭만적인 장면이겠지만 이 그림에선 어둡고 우울해 보인다.그림 상부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7성, 북두칠성, 즉 큰곰자리를 발견할 수 있다. 국자의 형태로 보아 비록 그림 속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북극성의 위치를 추정하는 것이 북극성이 있다는 것은 곧 그곳이 북쪽 하늘이라는 것을 의미하므로 고흐가 그림을 그릴 때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흐가 그림을 그릴 때 대부분 남서쪽 방향을 보고 그린 것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남서쪽 하늘을 보면서 기억 속의 북쪽 별자리를 임의로 옮겼을 수도 있다. 천문학자들은 특정 날짜에 특정 방향으로 보이는 별자리의 위치를 시뮬레이션하는 플래니테륨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림 속 시간대를 1888년 9월 20일 밤 10시 30분부터 11시 15분, 또는 27일 밤 10시부터 10시 45분경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밤의 세계에서 발견한 다채로운 향연
이 작품은 밤하늘과 함께 19세기 당시 새로운 것이었던 인공조명의 빛나는 색을 표현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밤하늘의 빛은 강물 빛으로 연장되어 마치 하나로 통합된 빛의 세계처럼 보인다. 이 빛의 세계가 캔버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반면 두 연인이 서 있는 어두운 육지는 전체 화면에서 상대적으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고흐가 낮의 고달픈 삶에서 벗어난 밤의 고요와 휴식으로 위안을 느꼈음을 의미하며 현실을 초월한 이상세계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다.고흐는 현실로부터 도피해 꿈을 꾸었고, 이 꿈을 개성적 색채를 사용해 표현했다. 코발트블루색 하늘은 즉흥적이고 거친 수평방향의 붓터치를 통해 그려지고 가운데 부분에 물감을 직접 칠해 주변을 방사형으로 마감한 별의 모양은 밤하늘의 불꽃처럼 보인다. 이 밤하늘의 불꽃과 같은 별 모양은 대기의 산란 또는 굴절에 의한 것으로, 이는 별이 수평선에서 가깝게 낮게 위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이 그림의 색채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밤이 낮보다 훨씬 풍부한 색을 보여준다…. 하늘은 청록색, 물은 감청색, 대지는 옅은 자주색이다. 도시는 파란색과 보라색이고 노란색 가로등은 수면 위에 비치다 빨간색 황금색에서 초록색인 청동색으로 변한다. 청록색 하늘 위로 큰곰자리가 녹색과 분홍색 섬광을 뽐낸다. 그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별은 가로등의 황금색과는 대조를 이룬다.
특히 푸른색의 깊이는 고흐에게 무한과 영원성을 의미해 그에게 큰 위안을 준 듯하다.
고흐, 『밤의 카페 테라스』, 1888년 『밤의 카페 테라스』의 노랑과 밤하늘
밤의 카페 테라스에서는 고흐가 좋아하던 노란색이 눈에 띈다. 고흐는 노란 집, 해바라기, 풍경과 카페, 자기 방을 그린 수많은 그림들로 황색에 중독돼 있었다. 일반적으로 우울증 치료에 노란색과 빨간색 밝은 계통의 색을 이용하지만 고흐가 유독 노란색을 선호한 것은 무의식적인 자가 치유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또 그가 즐겨 마셨던 압생트라는 독주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압생트는 19세기 유럽에서 인기 있는 술로 람보, 모파상, 마네, 고흐 등 시인, 화가, 소설가들이 즐겨 마셨다고 한다.녹색 요정으로 불리는 이 브랜디를 즐겨 마신 고흐는 알코올 중독 증상도 보였다. 압생트에는 시신경을 해치는 성분이 있어 고흐가 황색을 너무 많이 썼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의 과도한 알코올 섭취로 기본적인 우울증과 간질증세가 악화됐고, 이런 건강 악화와 괴로운 현실이 그를 밝은 황색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이끈 것으로 보인다. 고흐는 침실 전체를 노란색으로 그리며 이렇게 편지를 썼다. “편안할 수 있도록 가구는 신선한 버터와 같은 노란색으로, 시트와 베개는 신선한 레몬색으로, 테이블은 오렌지색으로…” 검은 색 없이 밤을 형상화한 <밤의 카페 테라스>도 노란색을 주색으로, 노란색과 보라색, 오렌지와 파란색 보색을 사용해 강렬하고 순수한 느낌을 준다. 임파스트 기법으로 두껍게 칠해진 짙푸른 밤하늘은 노란색과 주황색으로 처리된 카페의 빛과 보색을 이뤄 왼쪽 나뭇잎의 녹색과도 아름다운 하모니를 보여준다. 구글 맵에서 제공하는 로드뷰를 확인해 보면, 고흐는 이 작품을 그릴 때 남쪽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카페는 고흐의 위치로 보아 마을의 동쪽에 위치한 것 같다. 하늘의 별자리는 염소자리나 물병자리로 추측된다.한편, <밤의 카페 테라스>를 둘러싸고 제러드 벡스터라는 미술사학자가 재미있는 해석을 내놓았다. 이 그림에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이 암시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림 속 인물들을 살펴보면 12명에 둘러싸인 긴 머리의 흰 옷을 입은 인물이 있고, 그 뒤쪽 창틀이 십자가처럼 보인다. 출입구를 빠져나가는 검은 그림자는 유다를 상징한다고 한다. 고흐가 처음부터 성직자가 되려 했고 평생을 수도승처럼 소박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했기에 흥미로운 주장이긴 하지만 그다지 신빙성 있는 주장은 아니다.
‘월출’에 숨겨진 수수께끼를 풀어낸 천문학자
고흐의 <월출>은 그가 1890년 5월 생 레미의 정신병원을 나온 뒤부터 1890년 7월 자살할 때까지 수개월간 정착한 파리 근교의 오베르쉬르와즈에서 그린 것이다. 달을 그린 것이다”라고 말한 고흐의 편지가 발견된 1930년대까지 이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아 달이 뜨는 모습이라기보다는 일몰에 가까운 풍경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한편 이 그림에 대해 동생 테오에게 설명한 고흐의 편지에는 작품이 그려진 날짜나 소인도 없다.천문학자 도널드 올슨은 이 작품에서 산 뒤의 선명한 황금색과 주홍색으로 그려진 천체가 달의 달의 출몰인지, 태양의 일몰인지, 그리고 그린 날은 언제인지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고 과학적 방법으로 그 해답을 알아내고자 했다. 그는 미술, 역사, 문학의 다양한 미스터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미국 천문학자로서 그 흥미로운 결과를 대중에게 널리 알려 유명해졌다. 올슨은 이 그림 속 천체의 위치를 천문학적으로 분석해 하늘에 떠 있는 것이 해가 아니라 달이며 달이 뜬 정확한 날짜와 시간까지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에 의하면, 고흐는 산·레미의 병원에서 바라본 1889년 7월 13일 밤 9시 8분의 월출 장면을 그렸다고 한다.그림에 따르면 달은 산 뒤에서 솟아나는 것처럼 보이며, 독특하게 돌출한 산의 절벽에 일부분이 숨어 있다. 보리는 이미 수확되어 칙칙한 노란색과 황토색으로 표현된 밀짚 더미만 군데군데 남아 있고 두 채의 집도 보인다. 올손과 그 동료들은 2002년 산=레미에 가서 고흐가 그린 돌출 절벽, 집, 밀밭 등이 상상 속의 모습이 아니라 실제 풍경이었음을 확인했다. 고흐가 살던 시절부터 쭉 자란 키 큰 소나무 숲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지만 직접 찾아가 확인해 보니 그림에 나타난 두 집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고흐는 산레미 병원에서 바라본 마을의 풍경을 그렸는데 하늘의 천체가 있는 곳은 남동쪽에서 확인되는데 이것이 달임을 증명한다. 일몰이라면 반대편에 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그림은 일몰이 아니라 월출장면을 그린 것임을 재확인했다. 올슨은 그곳에서 6일 동안 밤낮으로 해, 달, 별을 관찰하고 산과 풍경의 지형 거리와 높이를 계산해 고흐가 이 그림을 그릴 때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를 알아냈다.올슨은 절벽 위에 걸린 달의 위치를 단서로 고흐가 언제 보름달을 보았는지를 추정했다. 그는 달의 주기표와 천문학적 계산에 의해 산 뒤의 보름달이 5월 16일과 7월 13일 이틀 중 하루에 그곳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림 속의 보리밭은 퍼즐의 마지막 단서를 제공했다. 고흐는 같은 장소의 보리밭 그림을 몇 점 그리고 테오에게 이 그림에 대해 언급하는 편지를 보냈다. 서신에서 그는 5월 보리밭은 녹색이고 6월 중순경에는 황금색으로 변했다고 말했는데 그림 속 황금빛 보리밭은 한여름의 들판을 보여 주므로 5월 16일이 아닌 7월 13일로 그린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천문학적인 계산을 한 뒤 달이 절벽 뒤에 떠 있는 시간은 오후 9시 8분임을 정확히 보여줬다.고흐의 <월출>이 당시의 사실적인 자연 풍경을 그대로 보고 그린 것이라는 올슨의 이러한 과학적 분석에 대해 일부 미술 전문가들은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고흐는 사진을 찍듯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여전히 그의 상상력과 창의성으로 독특한 예술 작품을 제작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사실적 자연을 묘사하든 하지 않든 고흐의 작품 고유의 독창성과 가치는 반감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쨌든 올슨은 고흐의 작품을 이전과는 다른 과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하려고 시도했지만 그가 발견한 미술과 천문학의 연결성이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다.
<사이프레스와 별이 있는 길>의 초승달이 말해주는 것들
고흐의 1890년 작품 <사이프레스와 별이 있는 길>은 네덜란드 도시 오텔로 뮐러 박물관에 고흐의 다른 94개 작품과 함께 소장돼 있다. 1899년 5월부터 1890년 5월까지 선=레미의 병원에 머무는 동안 고흐는 인근 사이프레스 숲으로 나가 나무들의 색채와 선을 관찰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했다. 이 그림은 생레미로 그리기 시작해 퇴원 후 오버시르와즈에서 완성한 작품이다.고흐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작품에 대해 사이프러스 나무는 언제나 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 나무들에서 아름다운 선과 비례를 발견할 수 있다. 마치 오벨리스크 같다고 썼다. 생애 후반부, 그는 다가오는 종말을 의식한 듯 죽음의 상징이기도 한 이 나무에 무척 매료돼 있었다.<사이프레스와 별이 있는 길>은 앞서 그린 <별이 빛나는 밤>보다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고흐의 예감을 더 강렬하게 보여준다. 화면 한가운데 땅에서 하늘 끝까지 솟아 있는 사이프레스 나무는 무한한 존재, 영적인 세계를 향한 고흐의 갈망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어두운 밤하늘을 분리하는 거대하고 위엄 있는 사이프레스 나무 양쪽으로 빛의 원으로 둘러싸인 희미한 별과 옅은 초승달이 보인다. 그림 옆의 일그러진 길을 차와 사람 둘이서 사이프레스 나무를 지나고 있다. 밤길을 걷는 두 사람은 마치 종교적 순례길에 나선 순례자 같은 느낌도 든다. 길 끝에 작은 집이 있고 또 작은 사이프러스 목재가 있다. 하늘의 소용돌이치는 붓놀림은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과 비슷하다. 보통 서양에서는 달빛이 창백한 은색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반 고흐의 달은 거친 질감의 노란색과 오렌지색으로 타오르고 있어 야성적이고 격렬한 느낌을 준다. 옆으로는 노란 별을 둘러싼 화려한 원형 빛이 회전하며 진동하고 있다. 이 그림은 죽음에 대한 암울한 예감이라는 정신병리학적 요소를 담고 있지만 독특한 색채와 양식화된 선의 미학은 보는 이의 눈길을 끈다.천문학자 찰스 휘트니는 그림의 초승달을 2~4일 전 밤에 뜬 것으로 계산했다. 고흐는 고갱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그림을 언급하는데, 그는 구름이 있는 군청 하늘에 분홍색과 초록색을 띤 아주 밝은 별과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 어두운 초승달을 그리려 했다고 한다. 여기서 고흐는 초승달의 모양을 지구의 그림자 때문에 생긴 것으로 오해한 듯하다. 오늘날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초승달과 지구의 그늘에서 생기는 월식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은 대개 하루 중 어느 시간을 묘사하는 것일까. 지평선에서 아주 가까운 초승달에서 보아 일몰 직후 저녁 무렵이다. 또 초승달의 밝은 부분은 지는 해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고흐는 서쪽에서 남서쪽 사이를 향한 채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된 화가’
별과 우주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이 밤하늘을 그린 고흐의 작품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몇몇 천문학자들은 고흐의 별 그림을 보면서 과연 화가가 실제로 밤하늘을 그렸을까, 상상 속의 풍경을 그렸을까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온갖 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그의 그림에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찾아냈다. 이들은 고흐가 그림을 그릴 때 어느 방향을 봤는지, 그림 속 별의 위치가 정확한지를 알아내고 특정 별과 달이 뜬 날짜와 시간까지 정확히 계산했다. 특히 올슨과 같은 천문학자들은 고흐가 그림을 그린 장소를 둘러보며 그의 그림 속 별과 달을 천문학적으로 분석해 대중에게 전달하는 재미있는 작업을 시도했다.이들의 연구결과는 고흐가 오로지 상상 속의 밤하늘과 자연풍경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사실적인 자연의 풍경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렸음을 말해준다. 그림을 그린 기간은 10년에 불과하지만 고흐는 900여 점의 유화와 1100여 점의 드로잉 등 모두 2000여 점을 남길 정도로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했다. 일반적으로 고흐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을 보면 그의 그림도 광적인 즉흥성에 의해 그려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고흐의 편지를 보면 그가 얼마나 세밀하게 계획하고 많은 생각을 한 뒤 그림을 그렸는지, 얼마나 꼼꼼하고 주의 깊게 작품을 제작했는지 알 수 있다.과학자들이 미술과 천문학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했던 시도는 고흐 작품의 소용돌이와 난류구조의 유사성에 대한 연구에서도 나타난다. 2004년 허블망원경을 이용해 과학자들은 별 주위에 있는 먼지 구름과 가스의 소용돌이를 볼 수 있었다. 이 소용돌이 패턴은 과학자들이 고흐의 작품을 자세히 연구해 마침내 <별이 빛나는 밤>, <사이프레스 나무와 별이 있는 길> 등의 소용돌이에서 난류의 패턴이 뚜렷이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다.난류란 기체나 액체의 불규칙한 흐름을 뜻한다. 혹자는 이 사실에 대해 고흐의 예술적 천재성과 영적 통찰력이 자연의 현상을 직관적으로 간파한 것이 아닌가 하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수학적으로 정확한 형태의 난류 패턴이 고흐가 정신적으로 혼란스러울 때의 그림에만 나타나며 조현병 증상이 없었던 초기에 그린 그림의 소용돌이는 실제의 난류와는 거리가 먼 패턴을 보인다고 말한다. 소용돌이 패턴이 정신적 착란 상태에서 포착된 것이든, 고흐의 천재적 창의력에 의한 것이든 미술에서 과학의 요소를 찾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밤하늘 세계는 고흐에게 고된 세상살이를 피해 도피할 수 있는 안식처이기도 했다. 그가 꿈꾸던 별들의 세계는 이 세상의 고통과 좌절 없는 평온의 세계였다. 많은 사람이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별이나 우주에 대해 고흐와 마찬가지로 낭만적인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짙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의 비밀을 찾아 천체망원경을 만들고, 달과 화성에 우주탐사선을 띄워 미지의 광활한 우주를 탐험한 뒤 신화적 관점이 아닌 과학적 분석으로 별을 보게 됐다. 인류는 별도 우리처럼 태어나고, 성장하고, 나이 들어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영원한 것은 없다. 안타깝지만 별은 다른 우주의 만물처럼 유한한 존재이지, 불쌍한 것은 고흐가 꿈꾸었던 것처럼 신과 영원한 세계가 아니다. 그러나 모든 별들이 각각 빛을 지니고 있듯이 그가 남긴 것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감동과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고흐는 자신만의 빛을 발한 하나의 별이 아닐까. 오늘날 고흐의 별 그림은 많은 사람의 감성을 일깨우기 때문이다.네덜란드 남부 도시 아이트호벤에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딴 자전거 도로가 있다. 낮에는 햇빛으로 충전하고 밤에는 발광 형광도료로 빛을 내지만 고흐 그림처럼 소용돌이치는 패턴을 가진 아름다운 도로이다. 화가의 그림이 미술관을 벗어나 우리의 실제 삶에서 하나가 되어 사람들의 감성을 일깨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가! 고흐는 우리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또 하나의 유산을 남기고 떠난 별이다.
[그림 속 천문학] 김성지 지음 / 김형구 도움 출판사 : 아날로그 P 305~330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