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9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 : [요10:22-42] 제목 : 신앙과 불신 ◉신앙은 상식이 아닙니다.-세상은 상식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상식은 오감에 의존하여 존재를 판단합니다. 여기서 오감이란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의 다섯 가지 감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실재는 이 다섯 가지 감각에 의해서 실체를 느낄 수 있어야 인정되는 거죠. 그런데 과학이 발전했기 때문에 한 매체를 통해 실체가 가설로 인정되면 그것 또한 실재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여기서부터 실재에 관한 오류에 대해 이의가 제기되기 시작합니다. 처음 다윈에 의해 진화론이 발표되었을 때는 이구동성으로 환영했지만 점차 냉철한 이성으로 판단해보니 허구성이 너무 많고 심지어 가설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습니다.예를 들어 진화론에서는 원숭이와 사람은 같은 조상이었다고 주장하는데, 그럼 지금도 원숭이는 원숭이로 존재하고 사람은 사람으로 막연하게 구분되어 존재할 수는 없고, 알과 닭은 어떤 것이 원인인가? 하는 것에 대한 답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진화론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진화론은 실재라고 할 수 없습니다.-그렇게 오감에 의해 실재라고 생각하는 상식으로는 이 세상에 실재하는 모든 것을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해야 합니다.대표적인 것이 하나님의 존재성 유무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과 같은 논쟁이지만 예수님이 하나님과 몸통이 같고 하나님에게서 나온 동심이체적인 존재인가? 그렇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는지. 아닌가?라는 논쟁 자체가 무의미하듯이 예수님이 하나님과 같은 본체임을 따지는 것도 무의미한 일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유대인 사이에 하나님이 보내시고 세상에 오셨다는 주장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요10:30-31]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올리려 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요10:33]에 ‘신성모독에 의한 것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신이라는 것이다.’라고 유대인들이 말합니다. 그러자 [요10:36]에 “아버지가 신성하게 하사 세상에 보낸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여 너희가 어찌 신성모독이라 하는가?”하고, [요10:37-38]에 “만약 내가 나의 아버지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나를 믿지 마라, 내가 한다면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닫게 하라”고 말합니다.-그러니까 하나님의 생존 여부와 예수님의 하나님과 같은 본체로서의 지위에 대한 논쟁은 그 자체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돌을 앞에 두고 ‘이것은 돌이다.’라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존재를 실재로 인정하는 상식을 가지고 만세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있던 예수님의 실재에 대해 논박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입니다. 만물 중 티끌에 불과한 존재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은 가장 극악한 어리석음입니다.-하루밖에 살 수 없는 하루살이가 내일에 대해 논하는 것이나, 평생을 살아도 이 지구 밖에 나갈 수 없는 존재인 인간이 빛의 속도로 만 년을 가야 하는 만 광년 너머에 있는 별에 대해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듯, 그 모든 무한한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존재성에 대해 가타하는 것은 그보다 낫더라도 극악한 불손은 없습니다.예수님과 유대인 사이에 있었던 논쟁을 살펴보면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요10:24]에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말하지만,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의 마음을 의심하게 하려는지 그리스도라면 밝혀 주십시오”라고 의문을 제기했을 때, 주님은 [요10:25-26]에 “예수는 대답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말했듯이 믿지 않는 것은 아니다.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이 나를 증거하는 것은 언제나 너희가 나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자꾸 대답을 했는데 너희가 믿지 않으니 또 무슨 대답을 들으려 하느냐. 당신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내가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행하는 것을 보면서 믿거나 믿지 않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입니다.-어떤 사람은 자신이 창세기 1장 1절부터 믿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라’는 말씀이 믿기지 않으니 나머지 말은 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그렇다고 합니다. -아니면 아니라는 이유로 증명해야 합니다. 반론은 반론하는 사람이 증명해야 하는 법에 근거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능력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아님을 증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신뢰는상식이나논리로아는것이아니라믿으면알수있는것입니다.-[롬 1:17]에 “복음서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신앙으로 신앙에 이르게 하시니”라고 말합니다. 믿을 때 믿게 된다는 거죠. 이 기묘한 말을 깨달았을 때 신앙의 첫걸음을 잡게 되는 것입니다. 믿을 때 믿게 된다는 거죠. -교회에 나오게 된 지 13년이 지났을 무렵에 주님을 만나 그날 저녁 성경을 펼쳐 첫 장을 파헤쳤는데 아무리 봐도 믿어지지 않았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다’는 말씀이 아무런 의심 없이 믿어졌습니다. 그동안 믿지 못했던 게 신기했어요. 그 말을 왜 못 믿었니? 라는 한탄이 나왔습니다. ※신뢰는 자신이 신뢰로 받아들일 때 모두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신뢰에이릅니다. [출3:14]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은 NIV 성경에는 (I am who I am)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나다’라는 말입니다. 누군가에게 증명해야 하거나 누군가가 상위자의 설명을 필요로 하는 수동적이거나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완전한 유일무이한 능동적인 존재임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가? 그리스도? 하는 믿음의 문제는 오감을 통해서 증명하거나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리석은 상식에서 일어나 신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믿고 그 믿음을 가지고 영생천국에 이르는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